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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에세이- 오렌지와 보랏빛의 하늘, 그레이스에서의 노을 (1918)

기사입력 2024.01.1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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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을빛이 처연하리만큼 곱다. 

    청록빛 바다 끄트머리 보랏빛과 오렌지빛의 강렬함이 시선을 붙잡아 맨다. 고단한 하루를 끝내고 이제는 편안함에 이를 시간! 날은 점점 어둑해지고, 태양빛은 더 찬란히 불타오른다. 화려한 날이 가고 불덩이 같던 젊은 시절이 끝나면 우리네 삶도 저리 저물어 가게 되는걸까? 


    딱 한번 봤을 뿐인데 색채 때문에 오래도록 각인되는 작품들이 있다. 도트무늬 가득한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호박이 그렇고, 환기 블루라 불리우는 김환기의 작품이 그러하다. 이제 펠릭스 발로통의 작품은 보랏빛 하늘로 내 기억속 언저리에 자리잡을 듯 하다. 


    저녁노을을 보노라면 어린 왕자 생각이 난다. “있잖아, 몹시 슬퍼지면 해 지는 모습을 좋아하게 돼.” 어떤 날은 마흔 세 번을 본적도 있어!“ 무슨 슬픈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깊은 슬픔이었는지 어린왕자는 끝끝내 답을 하지는 않았다. 혼자 사는 작은 별에서 때로는 외로웠겠고, 때로는 속상해했을 그가  저 타는 붉은 노을을 보면서 위로 받았으리라. 


    나는 원래 씩씩하고, 소소한 일들에 감사하며, 하고 싶은 일들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다. 아니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내 삶에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힘든일이 생겼났다. 남편에게 예상하지 못한 큰 병이 찾아온것이었다. 수시로 병원을 오가며 왜 이런일이 생겼을까 몹시 원망하고, 절망했다. 그날도 병원을 나서 집으로 오던 길이었는데, 운전을 하다 무심히 고개를 돌린 그 곳에 펠릭스 발로통의 그림과 비슷한 빛깔의 석양이 지고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어둑해지기 시작한 저녁나절에 붉은 빛을 띤 오렌지빛 태양이 보랏빛과 연분홍빛의 구름에 휩싸여 서산에 넘어가고 있었다. 순간 내 상황은 잊은채 ”정말 곱다‘라는 혼잣말이 툭 튀어 나왔다.


    그 때 깨달았다. 힘든 순간에도 아름다운 것은 여전히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것을. 처음보는 이 그림을 보고도 어디선가 본듯한 기시감이 든 것은 아마 그때의 기억때문인가보다. 


    이제 나는 서서히 그 옛날의 내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남편도 많이 좋아졌다. 어린왕자가 슬플때마다 저녁노을을 마주했듯, 나도 종종 저녁노을을 보며 위로받는다. 가까이 다가가보면 우리는 각자 한 가지씩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나면 지금 제일 힘들었다고 생각한 일도 아무것도 아닐 때가 많다. 때로는 소소한 사물 하나에 커다란 위안을 받기도 한다. 그러므로 지금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을 보고 부러워하지 말고, 내가 더 불행하다고 너무 속상해하지 말자. 전체 인생에서 돌아보면 행복과 불행의 총량은 모두 비슷하다고 하지 않던가. 


    그나 저나 보랏빛으로 물들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화가는 어떤 상념에 잠겼을까? 

    - 정종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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