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2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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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字千金(일자천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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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는 내친구

一字千金(일자천금)

(풀이)-한 글자에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아주 빼어난 글자나 시문(時文)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https://youtu.be/p95sIwp-_7c(동영상 시청)

 

      一: 하나 일  字: 글자 자  千:일천 천  金: 쇠 금

 

(풀이)-한 글자에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아주 빼어난 글자나 시문(時文)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유래) 전국 시대 말엽,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과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은 각 수천 명, 초(楚)나라 춘신군(春申君)과 위(魏)나라 신릉군(信陵君)은 각 3000여 명의 빈객(賓客)을 거느리며 위세를 떨치고 저마다 유능한 선비들을 예우하며 빈객들을 확보 하기 위해 경쟁하였다.

 

 한편 이들과는 다르게 신분은 높지 않았지만 일개 상인 출신으로 천금을 모은 여불위 역시 빈객을 모으는데 온 힘을 다 하였다. 당시 최강국인 진(秦)나라의 재상(宰相)이 되어, 어린(13세) 왕 정(政:훗날의 시황제)으로부터 중부(仲父)라 불리며 위세를 떨친 문신후(文信侯) 여불위(呂不韋:정(政)의 친아버지라는 설도 있음)가 바로그 사람이다.


정의 아버지인 장양왕(莊襄王) 자초(子楚)가 태자가 되기 전 인질로 조나라에 있을 때 ‘기화 가거(奇貨可居)’라며 천금을 아낌없이 투자하여 오늘날의 영화를 거둔 여불위 였다. 그는 진나라가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재능 있는 선비들을 우대하지 않은 것에 안타까움을 느껴 막대한 사제(私財)를 풀어 3000여 명의 빈객을 모아 들였다.

당시 제후들의 식객 중에는 변사(辯士)가 많았고 순경의 문하생들이 책을 저술하여 천하에 널리 베포 했다.(사기-여불위 열전)여불위도 빈객들로 하여금 견문을 저술하게 하고 그것을 집대성 하여 팔람(八覽),육론(六論),십이기(十二紀)등 20여만자로 된 책을 만들었다

 

여불위는 이 책은 천지만물과 고금의 일들이 기술 되어 있다고 여겨 그 이름을 여씨춘추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여씨춘추를 도읍인 함양(咸陽)의 성문 앞에 진열 시킨 다음 그 위에 천금을 매달아 놓고 방문(榜文)을 써 붙였다.

 

“누구든지 이 책에서 한 자라도 더하거나 덜 할수 있는 사람에게는 천금을 주리라.”

 

후세 사람들은 이 성어로 문자나 문장의 가치가 매우 높아 한 글자 일지라도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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